법정에서 소환된 17세기 영국, 그 이면의 함의
어제 있었던 지귀연 부장판사의 내란죄 1심 선고 공판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지점은 단연 1649년 영국의 국왕 **찰스 1세(Charles I)**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정치적 격랑 속에서 사법부가 400여 년 전의 역사적 전례를 들고나온 것은, 단순히 처벌의 정당성을 찾기 위함이라기보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세간의 시선은 좌와 우로 나뉘어 뜨겁게 충돌하고 있지만, 이 판결이 가져온 역사적 비유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뜯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보입니다. 당시 영국 사회가 가졌던 왕에 대한 종전의 가치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법치주의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담담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찰스 1세와 '왕권신수설'이라는 견고한 성벽
17세기 초 영국을 지배하던 역사관은 **'왕권신수설'**이었습니다. 이는 왕의 권위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지상의 그 누구도 왕을 심판할 수 없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찰스 1세는 이 관념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였습니다. 그는 의회의 동의 없는 세금 징수나 자의적인 구금을 '신의 대리인'으로서 행하는 당연한 통치 행위로 여겼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왕을 재판한다"는 발상은 천지가 개벽할 일과 같았습니다. 왕은 곧 법의 원천이었고, 법이 법의 원천을 심판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었기 때문입니다. 찰스 1세 역시 재판 내내 **"나는 너희들의 법 위에 있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패배하여 붙잡혔을지언정, 법적인 주권은 여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2. 역사관의 전변: '국왕의 반역'이라는 역설
하지만 1649년의 재판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역사관의 변경을 시도합니다. 바로 **"왕도 국가에 반역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종전의 역사관에서 '반역'이란 신하가 왕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었으나, 재판장 존 브래드쇼는 이를 뒤집었습니다.



재판부는 왕과 국가(국민) 사이에는 일종의 '계약'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왕이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무력을 동원해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를 공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왕이 국가라는 공동체에 저지른 가장 큰 반역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이는 주권의 소재가 '왕'에서 '법과 국민'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습니다.
지귀연 판사가 어제 재판에서 이 대목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명확해 보입니다. 현대의 대통령 역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일 뿐이며, 그 위임의 범위를 벗어나 헌법 기관(국회)을 무력으로 억압하는 행위는 400년 전 찰스 1세가 저질렀던 오류와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입니다.
지귀연 판사의 판결문 속 명언 해석 바로가기위 글에서는 판결문 중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촛불 비유' 등 구체적인 문장들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3. 지귀연 판사가 바라본 '국헌문란'의 본질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행위를 **'위로부터의 내란'**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통상적인 쿠데타가 군부 세력이 정권을 찬탈하는 것과 달리,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내란죄 성립의 핵심은 '국헌문란의 목적'과 '폭동'의 결합입니다. 지귀연 판사는 당시 계엄군이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려 한 행위를 단순한 질서 유지가 아닌, 입법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무력으로 정지시키려 한 명백한 실행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찰스 1세가 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 했던 역사적 장면이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재현되었다고 본 셈입니다.
4. 중도적 관점에서의 판결 함의
이번 판결을 두고 한쪽에서는 '정치적 보복'이라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당연한 귀결'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중도적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권력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확인하는 과정에 서 있습니다.



지귀연 판사가 소환한 찰스 1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떠한 통치적 결단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 재판부의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이는 특정 인물에 대한 증오나 지지보다는, 우리가 합의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사법부의 고심 어린 답변으로 읽힙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왕보다 국가(법)가 우선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했습니다.

이 판결이 향후 상급심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그리고 우리 헌정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는 이제 국민 모두의 지켜봄 속에 달려 있습니다.
내란죄 무기징역 선고 기준과 형법적 쟁점 분석법정형이 사형까지 가능한 내란죄에서 무기징역이 선택된 법리적 배경을 정리한 글입니다.
참고한 공신력 있는 자료:
- 영국 국립 기록 보존소(The National Archives): 찰스 1세 재판 기록 및 배경
-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 12·3 내란 사건 1심 선고 요지
- 주요 언론사(중앙, 조선, 한겨레 등) 종합 보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