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시대의 정의를 문장으로 기록하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울려 퍼진 지귀연 부장판사의 목소리는 단순한 유무죄의 판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켜온 헌법적 가치를 다시금 환기시켰습니다. 특히 판결문 곳곳에 배치된 비유와 문장들은 감정적인 호소를 배제하면서도, 법이 통치권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법부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수 없다"는 문장에 열광하거나 혹은 비판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법리적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귀연 판사가 낭독한 판결문의 주요 대목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법치주의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수 없다"
지귀연 판사가 인용한 이 비유는 법철학의 고전적인 쟁점인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관통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은 국가 안보와 사회 혼란 방지라는 '정당한 목적'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할지라도,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군을 동원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킨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통치자가 지향하는 국가적 대의를, '촛불'은 시민이 합의한 법적 절차와 민주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통치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위법하다는 것이 사법부의 단호한 판단이었습니다. 이는 1번 글에서 다룬 찰스 1세의 '왕권신수설'에 대항했던 근대 법치주의의 목소리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400년 전 영국 찰스 1세 재판의 역사적 배경 보기지귀연 판사가 왜 찰스 1세를 소환하여 "왕보다 국가가 우선"임을 강조했는지, 그 역사적 필연성을 정리한 메인 허브 글입니다.
2. 수탁자로서의 대통령: 위임된 권력의 한계
판결문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논거는 대통령을 **'주권의 수탁자(Trustee)'**로 규정한 대목입니다. 지귀연 판사는 대통령이 갖는 강력한 권한인 '계엄 선포권' 역시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무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계약의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설명입니다.



객관적인 법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내란죄'의 구성 요건 중 하나인 **국헌문란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근거가 됩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헌법적 기능을 정지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 원칙은 향후 통치 행위의 사법 심사 범위를 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3. 사법부의 존재 이유: 침묵하지 않는 법정
지 판사는 판결문 마지막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해서도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격동하는 정치적 현실 속에서 사법부가 침묵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만이, 헌법 질서를 최후까지 지탱하는 보루라는 신념입니다.



이러한 소신은 비단 이번 재판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큰 고비마다 우리 사법부가 직면했던 도전이기도 합니다. 판결문에 녹아 있는 단호한 어조는, 특정 정파의 이익을 떠나 '법 앞의 평등'과 '죄형법정주의'라는 대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내란죄라는 무거운 죄명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택하기까지, 재판부가 검토한 구체적인 형법 조항과 양형 기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분석 글에서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형법 제87조의 구성 요건과 이번 판결에서 고려된 가중·감경 요소를 전문가적 시각에서 분석했습니다.
참고 및 출처: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고합XXX호(내란죄 등) 1심 선고 요지
- 대법원 법원도서관: 법치주의와 통치행위론 학술 자료
- 언론 보도 종합: 지귀연 판사 판결문 주요 발언 및 사회적 논란